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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이야기

"시댁에만 가면..난 남편의 그림자"

일산백송 2017. 9. 30. 21:31

경향신문

[커버스토리 - 시월드의 불편한 추석]"시댁에만 가면..난 남편의 그림자"

박송이 기자 입력 2017.09.30. 10:00 수정 2017.09.30. 10:22

 

[경향신문] ㆍ‘가부장제의 낀세대’ 2030 며느리들의 답답함

 

며느리되기, ‘을’의 시작

 

“아버님, 어머님께 사랑받고 예쁨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습니다. 딸처럼 살갑고 애교 많은 며느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결혼을 앞둔 김현주씨(34·가명)는 예단과 함께 보낼 예단편지를 쓰기 위해 인터넷에서 편지 예문을 검색했다. 참고할 예문들을 읽으면서 김씨는 편지를 쓸 자신이 점점 사라졌다. ‘애교’와 ‘싹싹함’을 장착한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겠다는 다짐을 선뜻 할 수가 없어서다. 철이 든 후부터 ‘사랑받고’ ‘예쁨받는’ 수동적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관계를 맺어본 적은 없었다. 물론 삶의 동반자로 평생을 약속한 사람의 부모님에게 예의와 정성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방적으로 자신을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을’의 자리에 배치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남자친구는 김씨의 가정에 새롭게 편입되기 위해 ‘을’의 자리를 요구받지는 않았다. 김씨는 남자친구를 바르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주시고 결혼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서로 존중하며 살겠다는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이 말만큼은 진심이었고 할 수 있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한가족이 되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서로를 알아가며 서서히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 후 시어머니는 애교 없는 김씨의 성격에 은근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고, 어색함 없이 곧바로 한가족처럼 지내기를 요구했다.

 

결혼한 지 3개월 후 시어머니는 김씨에게 애교 많은 친구 며느리 이야기를 한참을 풀어내다 “남의 식구인데도 참 탐이 나더라”라고 말했다. 김씨는 시어머니 말에 “그 며느리가 성격이 참 좋은가보다”라며 겉으로는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이 말의 뜻을 짐작하느라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엉겁결에 비교를 당하고 보니 김씨는 자신의 성격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시어머니는 업무시간에도 틈틈이 전화를 해 시아버지께 안부전화를 드리라고 말했다. 정작 남편은 하지 않는 안부전화인데 왜 며느리인 자신에게는 요구하는지 불만이 쌓였다. 김씨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다져가는 과정은 시간을 두고 서로 맞춰가며 자연스럽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어머니는 자신이 그려온 ‘며느리상’에 맞는 며느리의 노릇을 김씨가 해주기 바랐다. 김씨에게는 시어머니가 부자연스러웠고 시어머니에게는 김씨가 부자연스러웠다. 김씨는 시어머니가 요구하는 며느리 노릇에서 자꾸 한 발짝씩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며느리는 가족이 아니다?

 

‘며느리 노릇’이 어색하기는 결혼 4년차인 한가영씨(36·가명)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는 한씨에게 “가족 간에 자주 보자” “가족이니 자주 연락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신다. 아들 내외를 보고 싶어 하는 시어머니 마음은 알겠지만, 한씨는 며느리는 ‘가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 가족이 될 수 없죠. 정말 가족이라면 내가 시댁에 가서 피곤하면 눈치보지 않고 쉴 수도 있어야 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머님이 쉬라고 해도 절대 쉴 수 없어요. 남편이 설거지를 같이하는 것도 눈총을 주시는데 어떻게 가족처럼 쉬겠어요.”

 

‘며느리’가 가족이 아니면 무엇일까. 한씨는 가족이지만 가족일 수 없는 ‘며느리’를 ‘하급직원’에 빗댔다. 일주일에 전화를 몇 번하고 1년에 몇 번 찾아뵈어야 하는지 어머님이 요구하는 ‘며느리 노릇’을 맞춰가다보니 자기가 ‘하급직원’이 된 것 같았다. “시어머니를 대할 때면 회사의 직장 상사를 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예의를 갖춰서 맞춰드리되, 가족이라는 기대가 없으니 자기방어적일 수는 있거든요. 상사한테 나의 모든 걸 말하고 터놓지 않잖아요. 시어머니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분이 듣고 싶어 하실 만한 이야기만 해요.” 가부장제가 만든 일방적인 ‘가족 만들기’는 결국 ‘고부관계’의 껍데기만 남겨놓을 뿐이었다.

 

여전히 강고한 가부장제

 

가부장제는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한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명절과 가족의 결합이 만든 ‘가부장제’는 시대착오적인 풍경을 낳는다. 며느리는 명절마다 자신의 이름을 잃고 ‘며느리’로 존재할 뿐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윤고은씨(37·가명)는 남편과 같은 직업이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도 있고 자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시부모님의 관심은 ‘남편의 일’에만 가 있다. 남편과 같은 일을 해도 며느리의 일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명절에 시부모님과 과일을 먹으며 대화하는 자리에서 윤씨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늘 배제된다. “현대인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일이고, 일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게 되잖아요. 명절에 부모 형제들이 모여서 일 얘기를 하는데 저의 일은 다 지워져요. 사실 처음 결혼해서는 너무 기분이 나빴어요. 남편이 옆에서 눈치껏 저를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다들 건성으로 반응하고 다시 남편에게만 집중해요. 시어머니에게는 같은 일을 해도 ‘내 아들보다 나을 게 없지 않냐’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죠.” 윤씨는 결혼 8년차이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다가가도 ‘며느리’의 고정된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데 절망했다. 같은 일을 해도, 돈을 똑같이 벌어도 윤씨는 남편에게 미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 “시댁 친척들이 가끔 오셔서 ‘이렇게 똑똑하고 유능한 남자와 결혼했으니 네가 얼마나 복이 많냐’는 말씀들을 하세요. 그 말 기저에는 내가 남편보다 모자라고 처진다는 뉘앙스가 있는 거잖아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 처음에는 거부감이 많이 들었어요. 남편의 부모님이니까 최소한의 온기는 유지하되 거리를 두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결론이에요.” 명절에는 시가를 먼저 찾고 친정에는 나중에 가야 한다는 가부장제의 공식도 여전히 흔들림 없이 유효하다. 이서영씨(37·가명)는 명절마다 좀 더 있다 가라는 시어머니의 요청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친정 엄마는 음식을 다 해놓고 명절 아침 내내 기다리고 있는데 시어머님은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늑장을 부리곤 하세요. 곧 시누이 오니까 같이 점심 먹고 가라고 계속 앉혀두기도 하고요.” 가끔 용기를 내 친정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에둘러 해도 시어머니는 “거기도 아들이 있으니 아들과 함께 보내고 있지 않으시겠냐”고 돌려 답하신다.

 

며느리가 명절에 자신의 원가족을 보고 싶어하는 감정은 ‘사돈도 아들이 있으니까’라는 논리로 편리하게 묵살된다.

 

눈치보는 시어머니, 눈치보는 남편

 

물론 시간이 갈수록 시어머니도 며느리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서영씨의 말이다. “어머님이 지난 명절 때는 남자들한테 설거지 맡기고 여자들만 싹 나가서 커피 마시자고 하더라고요. 아마 딸 가진 친구들한테 며느리에게 잘해주라는 얘기를 듣고 오신 거 같아요. 사실 우리 시어머님은 아들이 부엌 들어가는 거 정말 싫어하시는 분이거든요. 신혼 첫 명절 때 남편하고 도련님이 설거지 도와주러 오니까 당장 ‘너네 지금 뭐하니, 이리 와라’ 그러시던 분이에요. 그랬던 분이 어쨌든 며느리들 눈치보며 조금씩은 변하려고 하시는 거죠.”

 

남편 또한 양자 사이에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진재희씨(34·가명)는 시댁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집에 찾아오라고 요구할 때마다 남편에게 중재를 요구했다. “시부모님한테 스트레스를 받으면 종종 남편한테 화를 내죠. 남편한테 미안하기는 하지만 며느리가 상처받으면 남편도 힘들다는 것을 시부모님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쌓아두지 않고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남편이 고맙게도 잘못했다고 대신 사과하기도 하고 잘 받아주는 편이에요.” 물론 진씨 남편의 케이스는 그나마 ‘고마운 경우’다. 그러나 남편의 괴로움으로 며느리들이 겪는 고통이 상쇄되지는 않는다.

 

며느리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작동했던 가부장제는 작동을 멈춘 지 오래다.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며느리 노릇’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며느리는 더 이상 없다. 윤고은씨는 “우리 대까지만 하고 끝나지 않을까. 우리 다음 대에는 사라져야 한다. 우리 세대가 그런 상식은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섭섭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시집살이 낀세대’ 5060 시어머니들의 속앓이

 

“내가 뭘 잘못했지?” 김미연씨(63·가명)는 요즘 들어 자신 없고 울적한 날들이 많다. 김씨는 2년 전 첫아들을 결혼시켰다.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을 다니던 보기만 해도 뿌듯하고 벅차오르던 아들이었다. 며느리 조건도 썩 마음에 들었다. 아들과 같은 학교 출신에 전문직 종사. 내색은 크게 안 했지만, ‘그래, 내 아들의 상대라면 이쯤은 돼야지’ 하고 내심 만족했었다. 김씨는 자신이 그려왔던 ‘맏며느리상’을 며느리가 실현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기대하지마, 요즘 애들이 우리 때 같은 줄 알아?” 먼저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들이 ‘꿈 깨’라며 핀잔을 줬지만, 그럴수록 처음에 기강을 잘 잡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우리집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제사나 집안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30여년 전 자신이 그랬듯 ‘며느리 노릇’에 익숙해지는 게 중요했다. 김씨는 1년에 6번 있는 제사에 며느리를 빠짐없이 불렀다. 친가 외가를 비롯한 친척행사에도 가급적 참석하도록 했다. 연락을 곧잘 하던 며느리에게서 연락이 뜸해진 건 1년 전 고조할머니 제사를 치르고 난 후다. “어머니, 저 오늘은 야근도 있고 너무 피곤해서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며느리의 말에 김씨는 “네가 와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제사상도 내가 다 차려놓는데 잠깐 들러 제사만 지내고 가”라고 말했다. 그 후로 며느리의 연락이 뜸해졌고 ‘간다, 못 간다’는 연락도 없이 아들만 제사에 참석하곤 했다. 당황한 김씨는 불현듯 자신이 잘못한 게 있나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친구들은 입을 모아 “아들만 키우더니 세상 물정을 모른다” “요즘 시할아버지 제사도 며느리가 잘 참석 안 하는데 고조할머니 제사까지 불러댔냐”고 핀잔을 줬다. 그 후로는 며느리에게 연락을 하기도 어려웠고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시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자조감에 울적해하며 둘째 며느리를 보게 되면 잘 지낼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지금의 50~60대 여성은 ‘낀 세대’다. 가부장제의 ‘며느리 노릇’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마지막 세대이며 자신의 며느리들에게 마냥 ‘며느리 노릇’을 요구할 수만은 없는 첫 세대다. ‘아내’ ‘엄마’ ‘며느리’로의 정체성으로 30년을 살았던 이들에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앞세운 며느리들은 ‘낯선 존재’다. 그러다보니 50~60대 시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며느리 노릇이 편했다”는 자조가 나오기도 한다. 자신이 당한 대로 ‘매서운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도 어렵고, ‘쿨한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김귀옥씨(59)는 자신을 늘 못마땅해하던 시어머니에게 호되게 시집살이를 당한 케이스다. 시어머니는 김씨의 살림솜씨를 문제 삼으며 아들에게 김씨와 이혼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김씨는 5년 전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자신은 있는 그대로 며느리를 인정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나도 며느리상이 있었다. 많은 시어머니들이 그렇듯 싹싹하고 애교 있고 연락도 자주 하는 며느리. 그래서 처음 며느리 맞아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해주면 안되겠냐고 부탁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며느리가 대답은 ‘네’ 했지만 막상 잘 안 하더라”면서 “섭섭한 마음도 잠깐 있었지만 좀 지나고 보니 며느리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내 속으로 난 자식도 다 다른데 성격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과거 시어머니처럼 며느리의 살림 하나하나에 간섭하며 따질 수 없게 되자, 시어머니들의 ‘간섭’은 ‘아들 걱정’으로 바뀌었다. 윤정현씨(64·가명)는 얼마 전 아들네 집에 가서 아들이 며느리 옆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본 후 속앓이가 시작됐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도 아들이 자연스럽게 부엌에서 일을 할 정도면 평소에는 얼마나 며느리가 우리 아들을 부려먹을지 너무 속상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반찬이니 뭐니 싸들고 가더라도 며느리로서는 시어머니의 간섭과 통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여기는 시어머니들도 늘고 있다. ‘무관심’ ‘거리두기’ 등 다양한 관계맺기 양상도 나타난다. 시어머니들이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주고받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자식 내외가 집에서 밥을 안 해 먹어서 걱정’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들은 ‘보면 속만 상하니 무관심하게 그대로 두라’는 조언들이 주를 이뤘다.

 

며느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김주옥씨(59)의 비결은 ‘딸 같은 며느리’란 딸처럼 애교 부리는 며느리가 아니라, ‘내 딸이라면’ 시키지 않는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친구들은 결혼한 아들 내외 집에 처음 방문하는 그에게 “뭐든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앉아서 며느리에게 밥상 받은 후 잔소리하면서 기강 좀 세우라”고 조언해줬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만약 제 딸이면 저녁 8시에 퇴근한 애한테 저녁 차려달라고 하겠어요? 내가 차려주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지.” 그는 “가족이라 생각하면 서로 편하게 배려해주려는 게 먼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집에선 아내 편, 부모님댁선 어머니 편…둘 다 같이 있을 땐? 난감하기만 할 뿐”

 

고부갈등의 한 축 ‘중재자’ 남편의 고충

 

결혼 3년차인 윤세훈씨(35·가명)는 6개월 전부터 아내와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6개월 전만 해도 아내는 어머니와 곧잘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6개월 전 어머니가 아내의 외모를 지적하며 성형수술을 권하면서 어머니와 아내 사이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윤씨는 처음에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내가 부모님을 계속 멀리하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상처받았는데도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냐며 윤씨에게 따졌다. 쏘아붙이는 아내의 말에 윤씨 또한 적잖은 상처를 받았다. 그 후로 윤씨는 아내와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윤씨와 아내의 사이도 멀어졌다.

 

고부갈등에서 숨겨진 한 축은 남편이다. 윤씨의 사례처럼 남편의 역할에 따라 고부갈등은 때론 부부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중간자의 위치에 서서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결혼 8년차인 이제영씨(41·가명)는 8년 동안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두 사람의 감정을 달래고 있다. 결혼 초기부터 삐걱대던 고부관계는 시간이 지나도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기만 했다. 이씨는 “나의 역할은 집에서는 아내 편을 들고 부모님 댁에 가서는 어머니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둘이 같은 시공간에 있을 경우는 그런 전략이 사실상 불가능해 난감하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씨 입장에서는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양보를 받아내려는 어머니와 아내, 양쪽 다 야속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고부갈등이 특정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생각에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 ‘중재자’의 역할을 감내하고 있다.

 

결혼 4년차인 서정우씨(34·가명)는 최근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더 이상 ‘중재자’ 역할은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단호함’을 연습 중이다. 늘 ‘우리 아들, 우리 아들’했던 어머니의 사랑은 서씨가 결혼을 하자 아내에 대한 비상식적인 대우로 변모했다. 서씨의 어머니는 아내에게 많은 걸 요구했다. 동서지간 관계까지 마치 초등학생에게 하듯 하나하나 지시했다. 처음에 아내의 감정을 정확히 몰랐을 때는 아내가 괜히 어머니를 ‘시어머니’라고 나쁘게 보는 건 아닌가 싶어 섭섭했다. 그러나 아내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태도는 서씨가 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서씨가 바빠서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것도 어머니는 아내가 시켜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서씨는 “나는 아내에게만 잘해주면 처가에서 인정받는데 아내는 우리 집에서 사사건건 악의가 있다고 오해를 받는다. 독립된 가정을 꾸린 만큼 어머니가 이제 나를 좀 놓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씨는 얼마 전부터 부모님에게 이런 불편한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을 연습 중이다. 서씨의 부모님은 물론 서씨도 아내도 모두 상처받는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단호하게 말하지 않고서는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씨는 “제도가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며 “결혼하고 아내와 많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나라 결혼 제도가 이상하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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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