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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본천황의 고백..나는 한국인의 후손이다

일산백송 2014. 2. 24. 16:28
일본천황의 고백..나는 한국인의 후손이다

**일본천황가는 가야.백제귀족이고 일본인들은 한국의 후손들이다.

    ‘일본천황의 고백’

 

2001년 12월 일본천황궁에서 아키히토(明仁) 125대 일본 천황이 한일고대사에 관해

"나 자신, 간무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낍니다." 라고 인정하였다.

 

그 동안 일본인들은 만세일계(萬世一系)라고 주장하며 천황가를 신성시해왔다.

만세일계, 즉 대륙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일본인들만의 혈통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사회에서는 천황의 혈통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물론,

언급을 하는 것조차 금기시 되어 왔다.

그런데 최초로 일황자신이 일황가의 뿌리가 한국인과 관련이 있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힌 것이다.

 

2세기경 한국남부의 가야(伽倻)귀족 일부는 바다를 거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일본열도의 구주 북부에 도착, 영농과 금속기 기술을 전달하고 그들의

야요이문화(彌生文化)가 일어나도록 했다.

(이때의 일본은 거의 원시시대)

김해김씨 족보에 수로왕의 왕자 10명 중 7명이 하동 칠불사에서 수도한 후 구름을

타고떠났다는 기록이 있으며 남규슈 가고시마 유적에 일본 최초의 궁궐 터가 남아있다.

이곳에서 세력을 강화한 가야인 후손이 일본 중심지역인 나라지방을 정벌하여 일본1대

천황 신무천황이 되었다고 전한다.

같은 시기인 2세기경 남규슈 가고시마 유적에 시치구마라는 지명이 있으며

지금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7명의 지배자가 웅거했다는 유적이 있다.

가야신을 모시는 7개소의 신사도 있고 7왕자를 주신으로 모신다.

인근에는 가라구니우즈미네신사 등 ‘가라’명칭을 붙인 신사들이 많으며 이 지방 향토사학자들은 "옛날부터

가야국 7명의 왕자가 이곳에 군림하여 세력을 뻗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왕가의 사학자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는 "일본신화는 가야신화와 흡사하며 연고가 깊다"면서 가야인이

천황가문의 조상임을 간접적 긍정한 바 있고

일본 개국왕 진무천황의 증조부가 바로 수로왕의 왕자들인 것으로 비정(比定)하는

일본 사학자도있다.

 

396년~5세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도와 남부를 원정, 백제를 정벌(396년)한

이래, 백제 왕족과 귀족일원 그리고 백성들이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게 되고

가야세력과 경쟁 끝에 백제계가 대신 일본을 제패(制覇)하게된다.

이때 백제의 문화와 기술,한자등이 건너가 아스카문화(飛鳥文化)가 태동되었다.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은 815년, 간무천황의 왕자가 편찬한 책으로, 고대 일본의 황족과 귀족의 계보가

적혀있다.

그 중 황족의 계보에는 천황이 백제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 것,

“민달천황(敏達 天皇)의 손자인 백제왕(百濟王)”이라는 글귀다.

간무천황 때 처음으로 제기된 한일동족론(韓日同族論)은 그 후 에도시대와 명치시대, 일제강점기,

그리고 현재까지도 계속 주장되어 온 이야기다.

말 그대로 한국과 일본이 같은 피를 나눈 민족이라는 이 한일동족론은, 그 뜻은 하나이지만,

그동안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교류와 협력차원에서, 때로는 침략의 명분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에 광복 후 일본의 역사학계는 활기에 넘쳐 사실(史實)의 진실 여부를 가리기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역작이 발표되었거니와, 그 중 최대의 역작이라 할 것은 학계의 원로인

동경대학의 교수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에 의하여 주장된 ‘기마민족국가설’이다.

그에 의하면, “3세기경 북아시아에서 활동하던 기마민이 부여·고구려를 거쳐 가야 방면에 정착하고 있다가

4세기 초 낙랑군(樂浪郡)이 멸망하고 백제·신라가 흥기함에 따라 압력을 받게 되자 바다를 건너

북구주로 이동하였다.

그 뒤 다시 기나이(畿內,교토부 나라현) 지방으로 진출하여 장차 일본열도를 통일하게 될 국가의 모체를

형성하였다.”고했다.

이때가 4세기 말엽으로 일본의 천황족(天皇族)이란 가야 출신이며, 천손강림(天孫降臨)이란 가야에서

북구주로 옮겨온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는 동북아시아와 가야·야마토 지방에서 출토되는 무기·마구(馬具) 등 고고학적 출토품의 유사성으로 보거나, 일본의 건국신화가 부여·고구려·금관국(金官國)의 그것과 유사한 점으로 보거나, 5세기경의 중국문헌

등을 참고로 할 때 실증된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인들의 DNA까지도 서로 가깝다.

 

일본신화에 천손이 내려온 곳이 구시후루다케(久志布多氣)라는 전승이 있는데,

이는 가야의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 구지봉(‘구시’는‘구지’)이었다는 점에서

지명의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또, 그 천손은 신성한 이불(眞床追衾)에 싸여 내려왔다고 하는데, 이것도 수로왕신화와

동일하고

교토대 명예교수 우에다 마사아키 또한 일본 천손강림신화가 가야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구지 봉우리라는 말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신화에서 천손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천강)과 그 산이 소호리산 혹은 구시후루 봉우리라고 명기되어 있는 것에서

가야의 신화와 공통된다고 한다.

일본의 최고의 역사서 일본서기(720)에는 일본의 선조 니니기노니코토가 내려온 지역을

구지후루다케 (후루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구지마을이라는 뜻이다. 다케는 봉오리라는 뜻)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다시말하면 구지마을 봉오리라는 뜻이다.

바로 가야의 건국신화가 시작된 김해지역의 구지봉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제사를 모시는 신관도 9명이라는 점도 삼국유사에 보면 수로왕을 맞이한 신관의

숫자가 9명이라는 점과 놀랍게도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어는 한국어와 문법구조가 유사하여 가장 친연성이 있는 언어로 분류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의 어휘 중에 우리말과 공통되는 경우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가야계에서 백제계로 전환한 이민단은 백제가 완전 멸망함에따라 새국가의 개념을

정립하여 자기네들 뿌리가 한국계임을 숨겨 완전 단절하려고

덴무천황때 "일본서기"日本書記(720년)를 다시 쓰게 됐으며

이러한 역사서 찬술을 계기로 왜국은 "일본"으로 국호를 개칭하여 독자적인 체제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과 한국.중국 학자들은 일본서기를

“고대 한국인들의 일본열도 진출을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조작, 변조 투성이의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조작된 역사(僞史)의 표본이라고 지적하며 또 역사서가 아니라

삼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한국이 일본의 뿌리이자 선조임은 확고부동한 진실이다.

일본은 온갖 침략과 역사왜곡과 망언으로 자기네들의 열등의식을 잊으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출처 : 藝香의 庭園
글쓴이 : 藝香 도지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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