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딴짓하다 딱 걸렸네 체리따봉..'휴대폰 문자' 나비효과
“8일 8시45분 티업입니다. 8시 만나서 아침하지요.”
지난 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업무 현황 보고가 한창일 때 주말 골프 약속을 잡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정운천 국민의힘 의원의 모습이 포착됐다. 정 의원은 “몇 달 전 잡힌 약속을 잠깐 언급한 것”이라며 진땀을 뺐지만, 윤석열 정부 첫 국감 시작 날부터 국정감사보다 골프 약속이 먼저냐는 여론의 뭇매를 피하진 못했다.
국회의원들 사이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노출 주의’ 경보가 켜졌다. 휴대폰에 사생활 보호 필름까지 붙이며 조심 또 조심하고 있지만, 잊을 만하면 메시지 노출 소동이 터져나온다. 문자메시지가 노출돼 곤란을 겪었던 의원들의 ‘잔혹사’를 돌아봤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준석 전 대표 징계와 관련해 같은 당 유상범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 정 비대위원장은 해당 메시지는 자신이 평의원이던 지난 8월13일 주고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동취재사진딱 걸린 문자메시지가 불러온 ‘나비효과’
정운천 의원은 그저 ‘망신살’에 그쳤지만, 유상범 의원은 문자메시지 노출로 ‘자리’까지 내놓게 된 경우다. 지난달 19일,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선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같은 당 유상범 의원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 “중징계 중 해당 행위 경고해야지요∼”라는 정 위원장의 메시지에, 유 의원이 “성 상납 부분 기소가 되면 함께 올려 제명해야죠”라고 답장했다. 이준석 전 대표를 둘러싼 징계 논의로 국민의힘이 한창 들썩거리던 때였다. ‘당을 중립적으로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 위원장과 당 중앙윤리위원회 멤버 중 유일한 현역 의원인 유 의원이 이런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은 사실이 공개되자, 이 전 대표 징계가 애초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진행되는 게 아니냐며, 공정성 시비가 일었다. “비대위원장을 맡기 전인 지난 8월 주고 받은 메시지”라는 정 위원장의 해명은 큰 힘이 없었다. 5시간 뒤, 유 의원은 윤리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지난 7월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 대정부 질문 도중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문자 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대통령의 ‘체리 따봉’ 메시지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사퇴의 시발점이 됐다. 7월2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무려 ‘대통령 윤석열’과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가 카메라에 딱 걸렸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 윤 대통령이 체리 따봉 이모티콘까지 달아가며 보낸 이 문자메시지는 누가 봐도 윤리위 징계로 직무가 정지된 이준석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었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언급한 ‘당무 불개입’ 원칙을 깨고, 껄끄러운 관계인 이 전 대표 쳐내기에 개입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대통령과의 사적 대화”란 선긋기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란 읍소도 소용 없었다. 야당과의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합의 실책에 이은 문자 메시지 노출 사태까지 겹쳐, 권 원내대표는 지난 9월 취임 5개월 만에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2014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도중 휴대전화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 사진을 보다가 걸렸을 때와는 비할 수 없는 파장이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뉴스1지난 5일 오전 8시20분,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국무회의에 앞서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낸 문자가 카메라 기자에게 포착됐다.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조사 대상으로 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감사위원회 의결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날치 <한겨레> 보도에 대해 해명자료를 낼 예정이라고 알린 것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감사원은 헌법기관이고 대통령실과 독립적으로 운영된다”(윤 대통령)더니 감사원 ‘실세 사무총장’이 대통령실 ‘왕 수석’에게 ‘보고’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야당에선 대통령실의 첫 자 ‘대’, 감사원의 첫 자 ‘감’을 따 ‘대감게이트’란 이름까지 붙이고, 유 사무총장과 이 수석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보좌진에게서 받은 “백현동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 개발 관련 허위사실 공표, 김문기(대장동 의혹 관련으로 수사를 받다가 숨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모른다 한 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는 문자를 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의도적 정치 행위?…일부러 흘린 거 아냐?
문자메시지 노출이 대부분 낭패로 이어지지만, 때로는 의도적 정치 행위로 비쳐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문자메시지도 그 한 예로 거론된다. 당시 이 대표가 보고 있는 휴대전화 화면에는 “백현동 허위사실 공표, 대장동 개발 관련 허위사실 공표, 김문기(‘대장동 의혹’ 관련 수사를 받다가 숨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 모른다 한 거 관련 의원님 출석요구서가 방금 왔습니다. 전쟁입니다”라는 보좌관의 문자메시지가 떠 있었다. 보좌진의 문자메시지 발신 시간은 오전 11시30분. 하지만 이 대표가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 본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이 대표가 정기국회 첫날 들이닥친 제1야당 대표 소환 통보를 알리는 한편, ‘전쟁’으로 응수하겠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본회의 시간에 맞춰 문자메시지를 노출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를 통해 야권 지지층 결합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6월27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 도중 김재원 의원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읽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문자메시지 노출을 통해 정치적 위상을 과시하는 효과를 얻은 의원들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로 정국이 뜨겁던 2016년 11월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포착된 박지원 당시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의 문자메시지가 한 예다. 박 위원장이 받은 문자메시지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보낸 것으로, 이 대표는 문자 메시지에서 “장관님(박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부 장관을 지낸바 있음) 정현입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비서 운운하시니 정말 속이 상합니다. …충성충성충성 장관님 사랑합니다 충성”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여당 대표가 비공개적인 자리에선 야당 비대위원장에게 저자세로 구는 듯한 인상을 주는 문자메시지였다. 그런데 박 위원장이 보던 이 문자메시지는 한참 전인 두 달 전 것이었다. 박 위원장은 “다른 문자를 확인하다 사진이 찍혔다”고 해명했으나, 노회한 박 위원장이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고자 이 대표의 문자를 의도적으로 노출시킨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김무성 국민의힘 상임고문의 문자메시지는 ‘형님 파워’를 보여줬다. 김 고문이 새누리당 의원이었던 2013년 6월27일, 국회 본회의 도중 같은 당 김재원 의원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당시 김무성 의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전 입수’ 논란을 겪고 있었는데, 김재원 의원이 이 사실을 발설한 당사자로 오해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재원 의원은 문자 메시지에서 “형님 맹세코 저는 아닙니다. 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 문자메시지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뒤, 김재원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 있던 김무성 의원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해명하는 모습이 다시 잡히기도 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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