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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이야기

"이웃집으로 잘못 배달 된 추석 선물, 다 먹었대요"..책임은 누가?

일산백송 2021. 9. 28. 10:03

"이웃집으로 잘못 배달 된 추석 선물, 다 먹었대요"..책임은 누가?

하수민 기자, 이사민 기자 입력 2021. 09. 28. 08:18 수정 2021. 09. 28. 09:04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7일 오전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 기사들이 분주히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추석을 앞둔 지난 주말, 강원도 원주시에 거주하는 A씨(55)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는 직장 거래처로부터 추석 명절용 과일 선물이 배송됐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집 문 앞 어디에도 선물은 없었다. A씨 거래처가 선물을 잘못된 주소로 보내와 이웃집으로 오배송이 된 것. 그는 다음 날 택배를 되찾으러 이웃집을 방문했지만 이미 이웃은 그의 명절 선물을 다 먹어 치운 후였다.

A씨는 "무려 10만원이 넘는 선물 세트였다"며 "오배송된 걸 뻔히 알고도 모른 척하고 먹은 게 화가 나 결국 이웃에게 선물세트 최저가인 11만원을 받아냈다"고 했다.

지난 18일 강원도 원주에 사는 A씨(55)는 오배송된 추석 과일 선물세트를 먹은 이웃에게 과일 값을 입금받았다 /사진=A씨 제공

엉뚱한 곳에 배달된 택배...못받은 사람, 받은 사람 다 '불만'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B씨(62)가 자택 앞으로 잘못 배송온 택배에 '반송요망'이라 쓴 종이를 붙여놨다. /사진= B씨 제공


신종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발생 이후 '문 앞'에 물품을 두고 가는 비대면 배송 수령이 늘면서 주문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택배가 오배송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택배가 잘못된 주소로 배송되면서 원래 받아야 할 수령자들뿐만 아니라 원치 않은 택배를 받은 사람들도 "처치가 곤란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B씨(62)는 자신의 집으로 잘못 배송된 명절 선물 택배 때문에 일주일 넘게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B씨는 "상품 송장을 보니 주소는 우리 집이 맞으나 수령인 이름이 달랐다"며 "물건을 가져가라고 택배사에 전화도 하고 배달원에 문자도 남겼는데 연락이 없어 지금 일주일 넘게 집 앞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그냥 먹자고 하는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고민 중"이라며

"만일 택배 주인이 뒤늦게 배상해달라고 하면 법으로 따질 것이다. 오배송 온 우리도 피해자이지 않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택배 오배송 사고는 물품을 배송한 배달원이 현장에서 책임지기 쉽다.

그러나 택배기사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택배 배달원 김모씨는 지난 추석 당일에도 휴일까지 반납하며 근무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아파트 한 단지가 더 생겼다고 할 정도로 택배량이 늘었다"며

"물량이 너무 많으면 우리도 사람이다 보니 실수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실수로 인한 오배송뿐만 아니라 잘못 쓰인 주소에 배달했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심한 언어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김씨는 "오배송되면 '이 XX' 'XX년' 등 쌍욕까지 듣는 경우도 많다"며

"'네가 잘못 갖다 놓은 주제에'라는 심한 말을 듣는 건 부지기수"라 토로했다.

오배송 택배 책임은 누가 지나?...'상황마다 다르거나 구제책 없어'

그렇다면 택배가 오배송될 경우 누가 책임을 지게 될까.

국내의 한 배송업체 관계자는 "분쟁 발생 시 피해를 본 고객에게 (택배사가) 먼저 보상한 뒤 잘못 여부를 파악해 택배 기사나 대리점, 본사가 연대 책임을 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씨는 "현장에서는 우리 같은 배달 기사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다시 원래 주소로 배송해준다"며

"심지어 택배 파손, 훼손도 기사가 책임지는 경우도 다반사지만 추석처럼 너무 바쁠 때는 일이 밀린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도 "송장에 기재된 주소지가 아닌 다른 주소로 배송이 되면 운송업자에게 과실이 있다"며

"표준 약관에 따라 고객에게 배상해야 하는 사유가 된다"고 했다.

만약 A씨나 B씨 사례처럼 잘못된 주소가 기재됐기 때문에 오배송된 경우에는 누가 책임을 질까.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주문자의 잘못으로 다른 주소지로 오배송됐을 경우 택배사에는 책임이 없다"며 "현재로선 오배송됐을 때 제3자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수거해주거나 폐기하는 구제책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다만 A씨 이웃처럼 오배송 상품인 걸 인지한 뒤에도 이를 먹거나 사용한 경우에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서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란)는 "잘못 배송된 남의 물건을 뜯어서 사용하거나 섭취한 경우 점유이탈물횡령죄 성립 가능하다"며 "고의성을 판단하는 것이 어렵지만 택배의 경우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확실해 본인의 것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어 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이사민 기자 24m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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