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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왜 우리보고 결혼하지 않느냐고요?

일산백송 2014. 9. 29. 16:52

왜 우리보고 결혼하지 않느냐고요?
연애·결혼·출산이 두려운 청년들의 이야기
베이비뉴스 | 김고은 기자 | 입력 2014.09.28 09:35

【웨딩뉴스팀 김고은 기자】 국내 굴지의 정유기업에 다닌다는 그가 말했다.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경로는 오로지 소개팅 뿐이라고. 

명색이 대기업남이라서 그런지 소개팅 하나는 줄줄이 잘 들어온다는 사족도 덧붙였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 결혼 계획은 없고, 사실 결혼 안 해도 그만이라고 평소 생각하는 주의지만 

소개팅 자리에는 대부분 결혼적령기의 여성들이 나와 애매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본인에게 첫 눈에 반한 남자와의 첫 데이트 후 3일만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했다. 

이른바 '사짜'라고 불리는 사람들부터 '클럽 죽돌이'까지 각계각층의 날고 기는 남자를 접해봤는데, 

아무튼 결혼에는 따로 인연이 있긴 하더라며 기혼자의 여유를 흘렸다. 

'결혼제도는 사회에 필요한 것이 맞긴 하지만 기대수명이 길어진 지금 평생 한 사람과 사는 게 

괴로울 수 있으니 결혼 제도 안에서의 자유연애를 추구할 필요도 있겠다'는 신선한 관점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우리 시대 평범한 청년들의 연애와 결혼, 출산에 대한 시각과 관점을 엿볼 수 있는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생각공방 온빛터에서 열린 '결혼이 고통이 되는 사회' 결혼불능세대 토크콘서트에서였다. 20대 중후반~30대 중반의 연령대로 구성된 7명의 패널들은 현 시대를 사는 청년으로서 '삼포'(연애, 결혼, 출산 포기를 뜻하는 말)를 외칠 수밖에 없는 저마다의 이유를 변론했다. 소개팅, 연애에 관해 얘기하던 초반 유쾌하게 흐르던 분위기가 결혼, 출산으로 주제를 옮겨가며 사뭇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생각공방 온빛터에서 다준다연구소가 주최한 결혼불능세대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온빛터 창문 밖에서 바라본 모습.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18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생각공방 온빛터에서 다준다연구소가 주최한 결혼불능세대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온빛터 창문 밖에서 바라본 모습.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우리가 결혼을 유예하는 수많은 이유들

"질문이 좀 이상한데요?" 

이날 행사의 주최자인 이동학 다준다연구소 소장이 '결혼을 꼭 하고 싶으냐'고 패널들을 향해 묻자 

한 여성 패널이 반문했다. 

청중 가운데에서도 '저게 질문이 될 수 있구나'라며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부분 패널들은 결혼의 제도와 필요에는 긍정했다. 

하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기대나 희망보다 '언젠가는 하겠지만…'이라는 

염려 섞인 유예로 여기는 경향을 강하게 내비쳤다.

"현재로써는 결혼을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없다. 

학교도 고학했고, 직접 번 돈으로 지금까지 생활해왔는데 아직 하고 싶은 공부가 많이 남았다. 

가정을 꾸리고는 싶지만 내가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들이 너무 많다. 

다 포기하고 지금 이 상태에서 결혼한다고 해도 지금의 나를 여자친구가, 여자친구 부모님이 받아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혼에 부정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한때 소개팅 풍년의 주인공 김재신 씨가 말했다.

모 신문사 입사 후 제의받은 첫 소개팅에서 만난 남성과 한창 열애 중이라는 신정은 씨도 

김 씨의 말을 거들었다. 

신 씨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다 하고 나면 돈도 못 모을 테고 나이가 찰 텐데 

아이는 언제가지냐는 걱정이 앞선다. 아예 빨리 결혼해버려서 같이 이것들을 감당하거나,

 그렇게 못할거면 각자 할 거 다 하고 30대 중후반에 결혼하는 게 최선인 듯하다"라고 동조했다. 


"'결혼을 절대 하기 싫어'라고 말하는 여자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여러 외적 문제 때문에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거라고 보는 게 맞다"는 

조성은 씨의 주장도 있었다.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부모의 왜곡된 기대가 결혼을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는 이야기도 언급됐다. 

양가의 부모가 집안끼리 기싸움을 벌이다 결혼 당사자를 파혼으로 몰고 간 사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서울 구로동에 예식장을 잡았더니 모양이 빠진다며 

신랑 쪽 집안 흠을 잡았다가 다툼이 커져 파혼한 집 이야기, 

집을 산 지역이 마음에 안 든다며 줄다리기하다 파혼한 집 이야기, 

교회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 성당에서 식을 올려야 한다며 서로의 종교를 주장하다가 파혼한 집 이야기, 

결혼 얘기 나오기 전부터 부모님이 상대방 고향을 마음에 안 들어 해서 반대에 부딪혔다는 이야기 등 

주변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일들이 회자됐다. 

김재신 씨가 이를 두고 동서고금을 초월한 적절한 비유를 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도 사실 엄마 아빠로부터 왔다."


◇ 서울에 사는 A급 여성 결혼 가장 어렵다?

연애·결혼과 관련한 ABCD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A, B, C, D급의 남녀 각각이 있을 때, 

남녀를 막론하고 남성 우위 등급을 선호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남성 B급 여성 C급, 남성 C급 여성 D급이 결혼 성사 확률이 높고 

남성 D급과 여성 A급은 결혼 시장의 '비인기등급'에 속한다는 이론이다. 

그나마 남성 D급은 외국인 등 결혼 상대도 수용 가능 범위에 둘 수 있지만 여성 A급은 범위 이탈이 어려워 

소위 '깍두기'로 남는다는 해석도 있다.

이러한 경향은 서울 혼인 연령 통계 조사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있다. 

2012년 조사 당시 서울 35세~49세의 미혼 인구 38만 명 중 남성의 과반수는 고졸, 

여성의 과반수는 대졸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학력화, 여성 지위 향상, 시대 흐름에 따른 결혼 가치관 변화와 맞물려 특히 여성 A급 계층 증가가 

빠른 폭으로 늘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도권, 특히 서울 거주 청년들이 지방 거주 청년에 비해 결혼이 어렵다는 호소가 짙은 경향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혼인 통계 조사에서도 이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전국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2.2세, 여성 29.6세였는데, 서울은 남성 32.6세, 여성 30.4세로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토크콘서트에서도 이러한 예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청중 중 예산이 본거지라고 밝힌 한 남성은 

"우리 쪽은 집값도 싼 편이고 결혼식 비용도 서울만큼 안 들어서 돈 때문에 결혼 어렵다는 소리는 

안 나오는 편이다. 친구들은 30살 전후로 다 장가갔고 여자들은 25살 전후로 시집가는 편"이라고 말한 한편, 

패널 중 독보적 냉소를 자랑한 모 인터넷 신문 편집장 이승환 씨는 

"예전에 지역 공장에서 일하던 때가 있었는데 소득이 낮은 편이고 학벌 안 좋아도 거기 사람들은 결혼 잘만

 하더라. 결혼이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쪽 분들 소수에 국한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 결혼이 하고 싶어지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게 우선

결혼은 하기 싫거나 상황 안 되면 못할 수도 있는 개인적 이슈인 것이 분명하나, 

국가가 나서서 이를 두고 문제 삼는 이유는 낮은 출산율이 가지고 올 다양한 사회적 문제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의 인구 통계 추이 상 현재 청년층이 고령화 단계에 진입했을 때 국민 연금 등

 국가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미 예고된 바 있다.

패널들은 출산율 상승을 위해 결혼과 출산을 국가가 개입하기에 앞서 국가가 갖춰야 할 역할에 대해 꼬집었다. 모 일간지 기자 정유미 씨는 

"왜 합계출산율을 개인에게 높이라고 강요하나. 그 전에 어떠한 아이도 보호할 수 있는, 

어느 조건에서 살아도 아이가 사는데 문제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런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구청 공무원으로 재직중이라는 이예송 씨는 

"아이 낳고 오면 회사에서 눈치보다 짤리는 현실 아닌가. 아이 갖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결혼 제도 내 자유연애 필요를 발언했던 이지영 씨는 

경제 발전과 의식 향상의 과도기적 단계를 밟고 있는 작금의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이 씨는 "사회는 아내도 돈을 버는 것을 환영하는 남편들이 많아지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남편은 육아와 가정에 대한 책임 의식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전세계적으로 여성 학력과 출산율을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출산 육아제도에 미비점이 많아 이 국가 문제를 일개 가정에 떠넘기고 있어서 

여성의 책임이 가중되니 결혼과 출산 제도에 대한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청중들도 결혼, 출산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의견을 제시했다. 

'명목뿐인 제도가 아닌 사회구성원을 실질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제도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결혼없이 아이를 키워도 사회안전망 내에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기초적 체제가 갖춰져야 한다', 

'유럽 선진국 사례처럼 아이만 많이 낳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등 이야기가 이어졌다.

한편 이날 열린 토크콘서트는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주제로 몇 차례 더 치러질 예정이다. 

다준다연구소, 사회디자인연구소, 2.1지속가능연구소가 공동주최하며,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다음 토크콘서트 일정은 다준다연구소 홈페이지(http://dajunda.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