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황혼이혼도 타이밍이 중요하다
조혜정 변호사 2019.03.28 05:00
[the L] [조혜정 변호사의 가정상담소]
[편집자주] 외부 기고는 머니투데이 'the L'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Q) 올해로 제 나이가 55세이고 결혼한 지는 29년 됐습니다.
결혼 후 늘 이혼이란 단어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았는데,
이제는 정말 이혼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 때가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가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은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패스하여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친정 부모님이 행시 패스하여 출셋길이 보장된 사위를 보고 싶어하셨던 것이 결혼의 중요한 동기가 되었고요. 그 때까지 남자를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남자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막연히 행시 패스한 학벌 좋은 남자와 결혼하니 당연히 미래가 밝을 거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혼해보니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결혼생활에 안 맞는 남자였습니다.
일단 신혼 시절부터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은 거의 없었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는 것도 있었지만 술과 친구를 좋아해서 늘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왔고,
주말이면 골프다, 등산이다 해서 집을 비웠습니다.
시부모님과 자기 형제들 일이라면 벌벌 떨면서 저와 아이들에게는 무관심해서
저와 아이들 생일을 기억하거나 선물 하나 제대로 사준 적이 없습니다.
남편에게 가족은 자기 부모와 형제들이었고, 저와 아이들은 더부살이였습니다.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저한테 월급 전체를 준 적은 한 번도 없고 늘 월급의 일부만 생활비로 줬기 때문에 저는 아직도 남편 월급이 얼마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그러면서 제게는 아무런 의논도 없이 시부모님과 형제들 빚을 몇 차례 갚아준 거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남편에게 따졌더니 남편이 ‘내가 번 돈 내 맘대로 쓰는 데 웬 간섭이냐’고 소리를 지르면서 밤새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서 그다음에는 입도 뻥끗 못 했습니다.
결혼 초기부터 자기 맘에 안 들면 소리 지르면서 욕하고 물건 부수는 일도 잦았는데, 횟수는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가끔 저와 아이들에게 소리지르면서 들들 볶아대곤 합니다. 바람도 피우고 다니는 것 같았지만 그걸 캐다가 난리가 날까봐 무서워서 제대로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았습니다. 이혼하자니 아이들을 혼자 키울 능력은 안 되고 그렇다고 두고 나가자니 아이들이 천덕꾸러기 신세 될 것이 뻔해서 못했습니다. 친정부모님도 시집 갔으면 그 집 귀신이 되라면서 절대 이혼을 못 하게 하셨고요. 남자가 나이들면 가정적으로 된다는 말이 있으니 혹시나 하면서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얼마 전 남편이 바람 피우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제가 더는 참고 살아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도 대학생이 됐으니 저도 엄마로서의 의무는 어느 정도 한 것 같고요.
하지만 막상 이혼을 하려니 어떻게 살아야하지 막막하네요. 남편은 2-3년 지나면 퇴직할 예정이니 이혼 후 2-3년만 버티면 남편 공무원 연금을 분할받아 기본 생활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의 대학학비와 결혼자금이 문제입니다. 이혼하면 남편은 아이들에게 돈을 안 대줄 사람이거든요. 제가 이혼하면서 남편에게 아이들 교육비와 결혼자금을 청구할 수 있는가요? 그리고 제 재산은 없고 남편 명의로 10억 정도 되는 집이 있는데 저는 여기서 얼마나 분할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평생 살림하고 아이들만 키워서 막상 이혼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겁이 납니다.
하지만 이런 남편하고 계속 살자니 그것도 지옥 같네요.
헛된 희망인 줄 알면서도 지금이라도 남편이 반성하고 바뀌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고요. 과연 제가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걸까요?
A) 그동안 정말 힘드셨겠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고, 잘 참으셨습니다.
선생님이 인내하신 결과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보살핌의 혜택을 동시에 받을 수 있었으니, 선생님의 희생과 인내는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하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 앞으로도 그런 희생과 인내를 계속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혼 여부를 고민 중인 선생님께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남편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처럼 가부장적인 남편과 결혼한 분들이 힘든 결혼생활을 버텨온 이유 중 하나가
‘남자는 나이들면 변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가부장적인 남편들이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경우가 간간이 있기는 한데 그러려면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 남편이 자신에게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충분히 깨우쳐야 하고,
둘째, 자기에게 소중한 가족들이 자신의 가부장적인 성향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아왔는지를 이해한 후,
셋째, 자신을 고치려고 노력한다는 세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수십 년간 몸에 밴 생각과 습관을 고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질문 내용으로 볼 때 선생님 남편은 이 세 단계 중 첫 번째 단계에도 이르지 못한 거로 보이네요.
선생님 남편의 마음 속에서 우선 순위는 일과 사교관계, 자신의 원가족이 차지하고 있고 선생님과 아이들의 중요성은 한참 후순위로 밀려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이 소중하다는 자각조차 없는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남편의 현재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두 번째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이혼 후의 생활대책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입니다.
이 부분에서 선생님이 잘못 알고 계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남편이 2,3년 후 공무원연금을 받게 되니 2,3년만 기다리면 남편의 연금을 분할받는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공무원 연금법에 의하면 배우자의 공무원연금을 분할받는 경우
분할연금수급권자도 별도로 분할연금수급연령에 도달해야 분할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공무원연금법 제45조 제1항).
즉, 남편이 공무원 연금을 받고 있더라도 선생님이 공무원 연금법의 분할연금수급연령이 안되면
연금분할을 못 받습니다.
현재의 규정에 의하면 선생님의 경우 (55세라고 하셨으니 1965년생이라고 한다면)
분할연금수급연령은 63세입니다(공무원연금법 부칙 제4조 제2항).
선생님이 남편의 공무원연금을 분할받으려면 앞으로 8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혼 결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고려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다면 남편이 자발적으로 주지 않는 한 이혼소송에서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의 대학교육비와 결혼자금을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학비가 계속 들어가는 현실과는 안 맞지만 현재의 법이 성인이 되는 만 19세 전날까지만 양육비지급의무를 인정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지금 이혼한다면 선생님이 받으실 수 있는 것은 위자료와 재산분할뿐입니다. 위자료는 인정받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고 인정된다 해도 수천만 원에 불과하니 재산분할이 중요합니다. 결혼기간을 감안하면 남편 명의 집의 1/2, 즉 5억원 정도는 분할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 자금을 기반으로 한동안 선생님과 아이들의 생계비와 교육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혼 여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현재보다 상당히 어려워질 것을 각오하셔야 하는 셈입니다.
남편이 바뀔 가능성은 없는데 이혼하면 바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칠 것이니 정말 힘든 결정입니다. 명확한 현실인식 위에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숙고하셔서 결정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20년간 가사소송 등을 수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족이 급격하게 해체되어가고 있음을 현장에서 실감했습니다. 가족해체가 너무 급작스러운 탓에 삶의 위안과 기쁨이 되어야 할 가족이 반대로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버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지난 20년간 깨달은 법률적인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나누려합니다. 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해결책을 찾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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